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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소로 ‘장칭’(가명)이란 이름의 중국 여성이 찾아왔다. 자리에 앉으면서 ‘남편’, ‘가출’이라고 말하기에 처음엔 남편이 가출을 했다는 말로 알아들었다. 알고 보니 가출한 사람은 바로 본인이었다. 3년 전, 알고 지내는 조선족의 소개로 지금의 남편을 만나서 결혼 후 한국에 들어와 충청도 어디에선가 살았다. 그러나 입국한지 한 달도 안되어 남편이 폭력을 휘둘러서 집을 나와버렸다. 얼마 후 비자를 연장할 때가 되어 남편과 살던 집에 찾아가보았더니 남편은 보지 못했고 그 집에 한국 여자가 들어와 사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남편이 새 살림을 차렸다고 생각한 그녀는 다시는 집을 찾지 않았고 창원으로 옮겨 일자리를 구했다.

 

그 뒤로 3년이 흘렀다. 결혼을 위해 입국한 한국 땅에서 한국인도 중국인도 아닌 처지로 살고 있는데, 중국 출신의 한 친구가 자신을 충동질했던 모양이다. 지금이라도 옛 남편과 이혼하고 다른 한국 남자와 다시 결혼하면 비자를 딸 수 있다고 했단다. 비자를 얻을 수 있다는 말에 귀가 솔깃해져서 이혼을 결심하고 동사무소에서 서류를 떼어보니 남편은 이혼 청구도 하지 않았는지 아직 혼인 관계가 지속 중인 것으로 나왔다. 남편과 어떻게 하면 이혼할 수 있는지 알아보러 상담소에 온 길이었다.

 

그녀에게 이혼에 관한 법적 절차를 설명해주었다. 결혼이민자가 국적을 따기 전에 이혼하면 체류 자격이 소멸되어 본국에 돌아가야 한다. 단 재판 이혼을 통해 혼인 파탄의 책임이 상대 배우자에게 있거나 자신이 자녀를 양육할 경우에는 예외다.

 

그러나 통상적으로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가출하는 것은 원인이 어디에 있든 이혼 재판에서 가출 당사자에게 유리하게 작용하지 않는다. 그래도 배우자의 폭력 때문에 가출 외에는 방법이 없었다고 주장할 경우에도 시간이 이미 오래 되어 그것을 입증할 길도 사라졌다. 지금 처지로서는 장칭 쪽에서 이혼 재판을 청구할 자격은 없는 것이다.

 

아직 이혼이 안되어 있으니 이제라도 남편과 재결합할 생각은 혹시 없는지 물어보니 딴 여자와 살고 있는 남자와는 결혼 생활을 할 수 없다며 펄쩍 뛴다. 남편의 연락처도 모른다고 하니 남편쪽 의사를 확인해볼 수도 없었다. 결론은 장칭의 현재 처지로서는 그녀를 한국 땅에 합법적으로 체류하게 만들어줄 수 있는 이혼 방법은 없는 것이다.

 

보기에 따라서는 이혼을 합법 체류의 수단으로 이용하는 것으로 볼 수도 있지만, 혼인 파탄의 근본 책임은 장칭에게 있지 않았다. 그녀가 이 지경까지 온 것은 남편의 폭력 외에 본인이 한국 사정에 무지하다는 것이 크게 작용했다. 나는 장칭의 처지가 하도 딱해서 남편과 문제가 생겼을 때 왜 곧장 우리 같은 인권단체를 찾지 않았느냐고, 이주민 지원단체의 존재를 왜 이제야 알게 되었느냐고 그녀에게 의미 없는 한탄을 하고 있었다. 가출 원인이야 남편이란 자가 제공했으니 그 당시에 손을 썼더라면 어떻게든 구제받을 수 있었을지 모른다. 최소한 지금처럼 결혼이민자에서 ‘불법체류자’로 전락하여 수 년째 숨 죽이고 살아가며 낱말 수준 이상의 한국어 구사력도 제대로 할 수 없는 삶은 겪지 않았을 것이다.

 

장칭에게는 가출했던 당시 한국 땅이 무섭고 낯설기만 했을 뿐 자신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줄 곳이 있으리라는 상상력은 작용하지 않았다. 한국에 대해 아무런 정보도 없고 낯선 땅에서 두려움만 크게 느꼈을 그녀의 무지를 탓하자니 안타깝기만 하다. 장칭의 사례가, 착실한 준비 없는 국제결혼의 폐해를 보여준다고 할 수도 있지만, 한국 사정에 무지한 국제결혼 여성들을 배려할 수 있도록 제도의 손질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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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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